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헬름 2세 (문단 편집) == 개요 == [[독일 제국]]의 제3대 황제, [[프로이센 왕국]]의 제9대 국왕이자 '''독일의 마지막 군주.'''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강제 퇴위 당했다. 패전 이후 [[네덜란드]]로 [[망명]]하였고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의 손에 떨어진 후에 네덜란드 도른에서 사망했다. 옆나라이자 동맹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무려 67년이나 재위해서 잘 부각이 안 되지만 빌헬름 2세도 재위기간은 30년으로 긴 편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재위기간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심지어 퇴위당한 이후로도 23년이나 더 살아서 1941년에 사망했다. 만약에 빌헬름 2세가 퇴위 당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재위했었다면 53년을 재위하며 이는 동프랑크부터 독일 제국까지의 모든 군주들 중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것으로 기록됐을 지도 모른다.[* 작위 상관없이 단순히 '군주 재위기간'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더 오래 재위한 군주들이 있긴 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카이저 수염]]의 어원이 된 사람으로, 특유의 수염 스타일로 유명하다. 뜻 자체도 [[황제]]지만, 근대 역사에서 '[[카이저]]'라고 하면 이 사람을 칭하는 [[고유명사]] 비슷한 것으로 굳어져 있다. 지리적인 의미의 [[독일]]이 [[독일 통일|통일]]된 후 3명의 카이저(황제)가 있었지만 전임 카이저들이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게 정치와 외교를 일임하고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과 달리[* 게다가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는 즉위한지 99일만에 후두암으로 사망하면서 존재감이 더더욱 없다.],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키고 친정을 하여 외교 전면에 나섰으므로 존재감이 크기 때문이다. 여하튼 황제가 된 지 얼마 안 된 1889년에 [[베스트팔렌]] 지역에서 광부들이 [[파업]]에 나서자 강경 진압을 주장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와 다르게 파업 문제에 온건책을 주장하면서 손수 중재를 해주었으며 이후, 총선에서 비스마르크파가 패배하자 이를 계기로 비스마르크를 총리에서 해임하고, 반사회주의자 법을 폐기하며 전권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자유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의 요구도 어느 정도 반영할 정도로 꽤나 유연했고 이후에 사회주의 견제에 나서기는 했지만 복지제도 증설에도 신경썼으며, 독일의 경제와 군사력도 건실하게 성장하여 세계 3위를 기록하는 등 내치 자체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심지어 1차 대전 직전, 독일의 철강 생산량이 영국을 따라잡을 만큼 독일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던 상황이었다.] 외치에서 소탐대실했고 전쟁도 말아먹으며 패전으로 초라하게 퇴위했다. 그런 점에서는 [[프랑스 제2제국]]의 [[나폴레옹 3세]]와도 유사하다. 즉 내수용 정치인이다. 덤으로 빌헬름 2세는 전쟁 전에도 언행도 너무 경박(...)해서 자국민들에게도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던 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